中國의 正體(上)-중국(中國)을 바로 보자.


 

   1755년 청(?)의 건륭(乾隆)20년, 청제국은 북강(北疆), 현재 중국의 서북쪽 천산산맥(天山山脈) 이북지역에 있던 준가르(準?爾)
왕조를 멸망시키고 4년후인 건륭24년 1759년에는 천산산맥 남쪽(南疆이라 불림)에서 반항하던 무슬림 집단인 호자(Khoja)형제의 반란을 
진압함으로써 청제국은 천산산맥의 남북 일대 즉 지금의 소위 신장(新疆)위구르 지역을 중국의 영토로 확정 하였다. 

최후의 유목왕국으로 불렸던 북강의 준가르 왕국은 이렇게 청제국에 의해 절멸하다시피 처절한 최후를 맞이한다. 따라서 북강 지역도 
초토화 되면서 무주공산의 허허벌판이 되고 말았지만, 초원의 실크로드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이기에 당시 러시아가 남진(南進)과 
동진(東進)정책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노리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중국으로써는 대제국 러시아와 직접 충돌을 피하는 완충지역으로 삼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했다. 

1871년 러시아와 청제국간에 “이리(伊梨)조약”(러시아에서는 “상트페트로부르그 조약”으로 불림.)을 맺기까지 약 115년간 이 지역은 두 
대국이 으르릉 거리며 주도권을 다툰 지역으로 평가 된다. 1851년 중국의 부패와 무능으로 촉발된 “태평천국의 난(亂)”은 중국전역을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1860년대 중국전역이 대단히 위험하던 때인 1864년 6월에 발생한 위구르족과 회족이 중심이 된 이스람교도의 대규모 저항은 성공을 
거두어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듯도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패권경쟁, 그리고 러시아의 남하저지를 외교의 기본으로 삼는 영국의 地球的 
체스판 훈수에 의해 저지되고 만다. 

舊韓末 영일동맹(英日同盟)을 맺어 한국을 침탈하려던 일본에 날개를 달아준 우리의 과거 역사와 닮은 점이 있지 않는가. 그때도 영국의 관심은 
오로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일본을 선택했을 뿐이다.

 
아무튼 다시 18세기 중엽으로 돌아와, 청국은 주인 없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타지에서 많은 병력을 충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러시아와 카자흐등의 유목민족이 빈번하게 출몰하는 준가르 초원을 실질적인 중국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중국의 민간인이 사는 곳으로 
탈바꿈 해야만 했다. 그래서 둔전(屯田)및 주방(駐防)과 환방(換防)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移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청의 강희제 
정권은 이민의 대상자로 퉁그스係와 몽골족 민족을 선택하게 된다. 이들이 바로 소론(索倫)족, 시버(錫佰)족 그리고 몽골계의 
차하르(察哈爾)족 등이다. 이들은 모두 흑룡강 유역 혹은 요동지역의 토착부족으로써 수렵을 중시한 용맹한 부족으로 이름을 떨쳤다. 
소론과 시버, 그 중에서도 시버족은 後金의 누루하치에게 끝까지 반항하던 9개 부족중 하나였다. 공교롭게도 청의 지배계급이 함께 삶을 
누리던 같은 지역의 부족들을 차출하여 머나먼 서역의 주방과 환방을 맡기게 했다. 3년 혹은 10년의 환방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차하르 역시 청나라에 끝까지 반항한 몽골족으로 누루하치 이후 홍타이지 시절까지 청에게 저항과 모반을 그치지 않았다. 이들 
소수 민족들은 중국각지에서 일어난 대소 반란에 투입되어 많은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나 할까. 
그들에게 반항했던 소수민족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소멸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참으로 무섭게 보복을 한 셈이다.


 

2004년 통계에 의하면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인구는 1,963만 명이다. 이 가운데 위구르족이 897만 명으로 신강성 인구의 45.73%, 만주족이 2만명, 
시버족이 4만명으로 0.21%에 불과하다. 소론계의 다구르족은 7,000명도 되지 않아 0.03%의 인구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의 漢族이 거의 절반에
 이른다. 1949년 모택동 정권이 수립했을 때 한족의 비율은 불과 3%에 불과하던 신강성은 면적이 166만 평방KM(한반도의 7배)로써 중국전토의 
17%에 이른다. 이 땅을 개척하고 지킨 만주 땅의 소수민족은 신강뿐 아니라 중국 전역의 각종 토벌작전에 투입되어 막대한 인적 손실을 입어 
지금은 민족적 구심력을 형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중국전체의 92%라는 한족의 바다 위에 떠있는 일엽편주(一葉片舟)라고나 할까, 거의 흔적만 
남은 상태여서 오히려 중국 당국으로부터 칭송을 받는 시혜적 "립서비스"를 받는 수준이라고 한다. 중국의 漢化정책은 무자비 할 정도로 
일방통행이며 지금도 현재진행형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길림성에 살던 조선족 자치구 역시 해체된 지 오래다. 
조선족으로 불리는 우리 동포들을 중국의 남부 서부등 중국 각지로 흩어버리는 분산정책을 사용한 것이다. 통일한국이 성립된 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불필요한, 그들이 예상하고 있는 부담을 사전에 차단 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2002년 시작한 동북공정 이후부터다. 
중국이 정보화 시대의 지구촌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21세기에서도 홍타이지 혹은 강희제, 건륭제의 청 제국식 무력으로 
밀어 부치는 방법이 통할는지 지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서북공정(西北工程)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한화(漢化)정책은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권과 종교적 문화적 동질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위구르, 카자흐, 키르키스족의 분리주의를 원천부터 무력진압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 가운데 카자흐, 키르키스족은 중국 국경밖에 
엄연한 독립국가를 건설한 민족이며, 위구르족은 국가는 없지만 거의 전원이 철저한 무슬림으로 신강 최대의 소수 민족이다. 1999년 신장 자치구의 
구도(區都) 우루무치에서 서쪽 끝의 “카스”까지 의 철도 개통 이후 급속한 한화정책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2005년 현재 우루무치의 
268만 인구 중에 85%가 한족이라니 漢族의 바다는 그 무엇이라도 삼켜 버리는 괴물 같지 않은가. 漢化정책은 한족의 인해전술(人海戰術)이 아니고 
무엇인가.

 

  금년 봄부터 시작된 티베트의 대중국 저항운동은 올림픽을 앞둔 중국당국의 골치거리로 등장했다.

그러나 중국은 당황하지 않았다. 티베트 승려들의 이유 있는 목소리는 총검으로 무참하게 저지되고 말았다. 중국이 펼치고 있는 또 하나의 공정, 
그것은 서장(西藏) 티베트의 漢化 정책인 서남공정(西南工程)이다. 티베트는 元나라 때부터 중국의 속국이란 명분으로 1950년 무력으로 점령을 
감행했다. 그러면서도 동북쪽에서는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기치를 걸고 6.25전쟁에 참전하여 우리의 통일을 결정적으로 저지한 역사적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 여하튼 달라이라마가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1959년 수만명의 희생자를 낸 對中항쟁이 있었지만 모두가 무력 앞에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고 언어와 종교가 다른데도 계속된 중국의 탄압에 티베트는 게릴라전으로 맞섰지만 중국은 1987년부터 400일간 계엄령을 
선포하여 무자비한 공포정치로 대응했을 뿐이다. 2006년 7월 티베트 영토 깊숙리 자리잡은 수도 “라싸”까지의 칭짱(靑藏)열차를 개통했다. 
이제 티베트에도 “漢族의 바다”가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문제 일뿐이다. 티베트 인구는 274만명(2005년 통계)이지만 티베트 西藏지역의 
인구94%를 차지하는 절대다수이다. 철로가 개설되었으니 한족이 물밀듯이 이주하고 경제권을 가지면 이젠 세월이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군사력, 정치력의 뒷밭침 속에 경제력만 장악하면 티베트 인구 300만 정도야 漢族의 하청민족으로 전락 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100년이고 200년이 지나면 티베트는 완전히 漢化되고 마는 것이다. 중국은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티베트의 면적은 123만 평방KM로써 한반도의 약 6배이며 중국 전토의 약 13%를 차지한다. 70여종에 이르는 광물과 수자원 그리고 산림자원의 
보고이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印度와의 충돌을 방지해줄 완충지 역할을 할수 있다. 중국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중원(中原)과 
변방(邊方)의 개념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장위구르에 西北工程을, 티베트에 西南工程을, 우리의 고대역사가 고스란히 묻혀있는 만주지역에는 東北工程을 추진하고 있는중이다. 
중국은 옆에 허술한 것이 보이기만 하면 꿀꺽 삼켜 버리곤 핏발선 눈초리로 노려보면서 큰 덩치를 꿈틀거리며 서서히 닥아오는 괴물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일단 점령하면 그곳에 살던 민족은 그들 표현대로 "다민족 국가의 일원"이 되고 그땅에 있었던 문화와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가 
되는것이다. 이것이 "어거지 무지막지 막가파 중국식"이다.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세로 인한 북한의 붕괴설과 함께 중국의 움직임이 우리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지대한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황장엽씨나 전문가들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100%라고 한다. 유사시 중국이 부분적 군사행동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가 
정신차려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는 현재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래를 예상하고 준비하는 자만이 미래를 여유있게 
맞이할수 있다. 한국은 세계의 4강이 교차하는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다. 위기이면서도 기회이기도 하다. 조상들이 물려준 영토를 온전히 보전할수 
있을때만이 한국은 진정하고도 능동적인 동북아의 균형자가 될수 있다. 필자는 진실로 이 페이지에 옮기고 싶지 않는 불길하고도 끔찍한 일이 
현실로 되지 않기를 조상님들과 천지신명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빈다. 

 

2008-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