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분단(分斷)의 전주곡(前奏曲)


 
         1945년 8월15일 일제(日帝)의 패망과 함께 우리 한국에게는 해방이 찾아 왔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戰勝國)인 미국과 구 소련(舊蘇聯)에 의해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을 맞게 된다. 한반도에 진주하고 있는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하기 위해 
      38도선 이북(以北)은 소련이, 이남(以南)은 미국이 진주하게 된다. 
      일본제국의 한반도에 대한 끈질긴 역사적 분단정책이 주효한 것이다.

         세계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인 1945년2월21일 연합국인 미국, 영국, 
      소련등 3개국 수뇌들이 얄타에 모여 전후처리문제를 위한 소위 "얄타협정"을 
      체결한다. 여기서 전후 독일의 분할점령이 결정되었다.
         1945년5월7일 독일의 무조건 항복.
                      한편 일본군에선 갑자기 조선주둔군 지휘권을 관동군에 이양.
         1945년5월10일 연합군의 독일 분할점령(독일서부;연합군, 동부:소련군이 점령)
         1945년5월30일 일본군, 북조선을 관동군이, 남조선은 일본본토군이 작전지휘권 
                       행사 하기로 변경. 
                       (한반도의 분할개념인 북조선, 남조선이란 단어 처음 등장)
         1945년8월6일 히로시마 원폭투하.
         1945년8월8일 소련군 일본에 선전포고 대일전 참전.
         1945년8월10일 나가사끼 원폭투하.
                       일본군, 한반도 전부를 관동군 사령부 지휘하에 두도록 또 변경.
         1945년8월15일 일본군, 북조선을 관동군에, 남조선을 일본본토군의 지휘하에
                       두도록 재 변경.
                       일본의 무조건 항복 발표.

          관동군 사령부 지휘하의 만주지역과 북한지역의 일본군을 소련이 관할하고, 일본 본토 
        사령부 지휘하의 남한과 일본본토를 미군이 관할하도록 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 공정한 
        분할인 셈이다. 일본은 독일과 같이 본토의 분할을 막고 대신에 조선의 분할을 국제음모로 
        달성했던 셈이다. 일제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한반도와 한국인에게 잔인한 역사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1875년 운양호(雲揚號) 사건과 이듬해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이후 가혹한 
        경제침탈과 수탈이 이어져 왔지만, 조선에 대한 실질적인 물리적 군사적 만행은 
        임오군란(壬午軍亂,1882년)이후일 것이다. 그로부터 해방전(1945년)까지 일본제국이 
        조선인에게 저지른 만행을 사진으로 바라보자. 



광복 독립군과 독립투사, 양민들이 잔학한 일본군에 붙잡혀 온 집결장이다. 일본군에 체포 되어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대기 하고 있다. 손을 뒤로 묶인채 소리 없이 침묵하고 있다.



독립투사 또는 양민을 학살 하기 위하여 일본도를 손질하는 일본군인 놈들.



독립군, 독립투사를 처형장소로 가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일본군놈의 장칼에 목이 떨어지는 독립군



일본군 놈들에 끌려 가는 독립군 의병장. 1932년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개최된 일본군 축하식에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의사(코트 입은분)로 밝혀졌다.



무기도 빈약하고 의복도 남루 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군놈들을 해 치워야 겠다는 의기 투철한 의병대들 모습.



총검으로 처형하기 위해 담장 쪽으로 몰고가고 있다. 이미 총검에는 선혈이 묻어 있다.



체포된 독립군은 결국 처형을 당했다. 칼로 목을 칠 때 넘어 가지 않도록 팔을묶고 뒤에서 당기고 있다. 일본인 칼에 목이 떨어지는 순간을 촬영한 것이다.



개를 풀어 인간 사냥을 하는 모습이다. 결국 총살로 생을 마친다.



독립군 간부의 처형 장면이다. 목을 치기전 뒷편 일본군이 웃는 모습을 볼 때 분노보다 일본의 양심과 목적을 혼돈하게 한다.



독립군 병사를 작두로 목을 짤라 공중 높이 매달아 놓았다. 추운 겨울 날씨로 오랫동안 매달아 경각심을 주기위해 인간이 할수 없는 최악의 형벌을 자행 했었다.



죽은시신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화장을 시켰다. 온 마을이 유해로 가득하고 일본의 원폭 피해참상 처럼 보인다.



손을 뒤로 묶고 물에 수장하는 처형. 처형이라기 보다 학살이라고 하는게 맞을것 같다.



일본 토벌군인 들은 사정없이 민간인 까지 처형 했다. 떨어진 목을 손에 쥐고 미소까지 보이는 것은 사람 목숨을 장난삼아 학살하는 것을 증명 할수 있는 장면이다.



일본놈 들은 포로가 된 민간인 과 독립군을 사정없이 목을 잘라서 담장 밑에 상품처럼 진열하여 두고 있다. 독립군 용사들은 죽어서도 한결같이 한을 품고 눈을 감고 있다.



생매장 되어지고 있는 양민들. 일본놈들의 잔혹함을 엿볼수 있다. 이렇게 돌아가신 분들은 숨이 끊어질때 까지 대한독립을 원했다.



일본군 의사 간부가 세균 생체 실험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마취도 없이 손을 묶고 해부하고 있다, 복부에 창자와 내용물이 나오고 일본인들은 입 마스크하여 지켜 보고 있다.



일본군들이 처형하기전 목에 수건을 감아놓은 것은 칼이 목을 치기전 잘린 몸통에서 품어 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수건을 얹어 놓은 것입니다.



손을 뒤로 묶고 칼로 살육하는 장면.



지독한 고문. 하의가 벗겨지고 혹독한 고문뒤 결국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나무 벌목 과 혹독한 노역을 시키고 난뒤 결국 모두 처형되었다.



총검으로 처형당하는 모습이다. 일본인의 입가에 미소가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



총검으로 심장을 찌르는 장면. 천벌을 받을 놈들이다.



일본도로 목을 자를려고 고개를 새우고 있다.



잔학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 처형하는 순간.



칼이 지나가 목이 잘린상태.



독립군의 목은 이미 칼이 지나가 목이 잘린 순간.



처형후 두병사의 자랑스런 자세로 기념찰영.



죽음을 기다리는 양민들 일본인 감시아래 손이 뒤로 묶여져 있다.



생매장된 양민들 가족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있는 장면이다. 죽은사람의 표정에서 일본인의 잔혹한 흔적을 엿볼수 있다.



처형을 기다리는 소년투사.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잔악 무도한 일본군들이 대량 학살 하고난 뒤 처참한 광경. 교랑에 즐비한 시체들 중에 뒤에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과 애국지사의 가족들이 시신을 찾기 위해 살펴 보고 있다.



잔혹한 살육 장면(1942) 옷이 벗겨진 여인은 온몸이 상처 투성이다. 목은 짤라져 있고 얼굴 모습은 등뒤로 돌려 져있다.



강간후 총으로 치부에 발포한 장면.엉덩이에 총상 구멍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성의 음부를 일본군이 가려 좔영 하였다.더 이상 해설이 필요 없는 사진이다.



한국 여인들을 찾으러 다니는 일본군들. 눈에 띄는 여성은 모두 끌고가 강간후 살해했다.이런 여성보급을 당담하는 일본군을 항상 여러명의 한국여성을 데리고 다녔다.



수장된 시신들. 손을 뒤로 묶고 저수지에 수장시켰다. 살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 에게는 긴 막대기로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곳으로 몰아 넣어 집단으로 무차별 학살 한 후 불 태웠다.



(1937년)허탈한 아버지 죽은 어린 자식 시신을 물건 처럼 들고 있을 만큼 어이가 없는 학살 이였다.



여성의 옷을 벗기고 마구 살육당 했던 참혹한 현장. 모래사장에 뒹굴고 있는 시신들. 일본군이 1943년 후퇴하면서 최후 발악을 자행한 흔적들이다.



(1938년)죽이는 방법 시범 실습 현장 장면이다. 강변에서 총검으로 살육하는 실습을 자행하고 있다. 이런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동원된 일본군인들은 관심 깊게 보고 있다.



살이 떨리는 공포.두사람의 양민이 포로가 되어 일본인에게 두손 모아 애원하는 모습이 보이고 일본군은 무엇인가 소리 치고 있다.



산더미 같은 시체. 여성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하체에선 선혈이 흘러 나오고 있다.



집단 학살. 가슴에는 죄명아닌 죄명을 달아놓고 사살했다. 얼굴의 선혈을 보아 총살이다.



부녀자 강간. 일본 병사의 손을 잡고 애원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젖가슴이 드러나고 반항을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난이다.



수장된 시신. 손을 뒤로 묶고 못에 수장을 시켰다. 막대기는 위에서 누르고 있다. 살기 위해 얼마나 바둥 거렸는지 짐작이 간다.



갓난 아기의 죽음. 인형처럼 뒹굴고 있는 아이들의 시체. 일본 놈들은 전쟁으로 이성을 상실 했었다.



너무나도 억울한 죽음. 잡아온 양민들을 표적 삼아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부녀자 집단사살. 엄마와 함께 도피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흐르는 선혈이 계단을 적시고 있다.



집단 사살 현장. 오른쪽 일본군이 죽은 시체를 확인하고 있다.



부녀자 절규. 하체를 강압에 의해.(차마 설명 할수 없음) 손에 실반지가 보인다. 단란했던 가정을 등지고 결국 정신대로 갈것이다. 여성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한숨 뿐이다.



작두로 처형 직전. 작두로 목이 곧 짤러 질것이다.



작두로 목을 짜르고 있다. 작두 앞에 잘려진 목이 하나 보인다.



작두로 수없이 잘려간 양민들의 모습.일본군이 장난 삼아 목이 잘린 시체의 손을 자신의 잘린 목부분을 가르키게 해놨다. 저런 끔직한 일은 일본군에겐 단지 장난에 불과했다.



일본 관동대학살 (1923년) 1923년 일본 관동일원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10여만명이 사망 했다. 민심이 극에 달하자 일본 정부는 한국인 폭동설을 조작 유포시켜 한국교포 약 5천명을 피살 하였다. (몽둥이, 죽창 으로 학살)



창고에서 독살. 엄청난 시체가 당시 혹독한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



노역자가 운송을 마치면 죽음 이다. 부릴때로 부리고 쓸모가 없어지면 장소와 때를 불문하고 이렇게 죽였다.



3명의 의병 총살 현장.영국여행가 비숍 씨가 촬영한 것이다. 영국왕립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서대문 형무소뒤 야산 공동 묘지에서 독립 의병 3사람이 총살 당하는 모습이다.



일본군들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을 말살하기로 한 것인가? 어린아이들 까지 죽여 불태워 졌다. 온갖 수단으로 자행한 만행도 사진 속에서는 피할수가 없다.



독립 투쟁을 벌이다가 집단학살된 유해들. 잔혹한 행위로 소리없이 죽은 영혼은 무엇으로 위로할 것인가?



선량한 양민을 단 칼에 처형하는 왜놈이란 지구상에 하나 밖에 없는 야만족속들이다.



▲<죽음 앞에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당당한 독립투사.



참아 볼수 없는 사진이다.



길거리에서 일본군인놈에게 강간을 당하고 맞어서 내장이 나온 상태.



일본군 종군 위안부(정신대)의 거실 내부. 이곳에서 일본군은 성욕을 채웠다.



근심이 가득한 한국여성. 일본군 위문품을 강제로 하는수 없이 만들고 있다. 그들은 또 이곳에서 강제 노동을 하면서 일본군의 노리게로 끌려 갔다.



종군 위안부에 들어 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 병사들.



종군 위안부의 음부를 노출하게 하여 찍은 사진.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막사로 실려가는 위안부.



위안부의 휴식시간.



일본병사 근무지에도 불려간 종군 위안부



일본병사 근무지에도 불려간 종군 위안부
이성 잃은 일본군. 일본군은 여성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장난하고 있다. 전쟁과 관계 없는 일이다. 일본의 숨은 근성을 엿볼 수가 있다.



한국인은 일본의 잔인무도(殘忍無道)한 만행(蠻行)과 괴수악귀(怪獸惡鬼)의 추행(醜行)을 결코 잊어서도 안되며, 잊을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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