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FILE(1)


                    ===DMZ는 한반도 分割이 根源.===

DMZ는 우리 강토인 한반도를 거의 2등분 하고 있다. DMZ는 세게 제2차대전이 끝날 무렵 시작된 동서냉전을 배경으로 한 남과북의 6.25전쟁 부산물이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과 쏘련은 한반도를 2등분 하기위해 38도선을 기준으로 분할 할 구상을 하였다. 한반도를 사이좋게(?) 2등분 하여 분할 점령,통치 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민족의 개념 을 생각지도 않고 오직 영토의 개념만 생각 했던듯 하다. 한나라,한민족을 반으로 쪼개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수 있을까. 현재의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이 전근대적이고 반인륜적으로 치부 될수 있지만 당시 영토를 지향하는 제국주의적 발상으로는 이해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2차대전을 일으킨 장본인 국가인 독일과 일본중에서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양분되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측과 쏘련의 점령하에 각각들어 가지만 일본은 그러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점령국이었던 한국이 대신에 그 멍에를 지게 된다.

===누가,왜? 우리국토의 분할을 기를 쓰고 劃策 하는가===

왜 일까,왜?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가, 어떤 세력이,”한반도는 분할 할수 있는 지역”, 혹은 “한반도는 분할 하기 쉬운 지역”, 또는 “한반도는 자기네들 이익과 불가분의 지역” 등으로 고정화된 사고를 갖고 은연중에 세계에 알려 왔거나 의도적으로 분할인식을 일반화 하지는 않았을까. 그것이 2차 세계대전의 종말현상과 같은 세계적 이슈가 발생 했을 때 한반도 분할이 큰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막후 절충 협상의 대상에 오르게 하는 요인을 만들지는 않았을까.

몇가지 역사적 흔적을 찾는다면 본 연구의 의미는 이미 달성 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38선 분할을 가져온 가장 가까운 역사적 사실은 2차대전이 중반을 지나 종반을 치달을 때인 1943년 11월27일, 이집트 수도의 “카이로 선언”때부터 한반도와 우리 민족의 운명과 관련된 열강의 움직임을 살펴 본다.

===그러나 一次的 책임은 우리자신이...===

그 전에 우리의 삶터인 우리강토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 끼리의 싸움 까지도 우리땅에서 하도록 한 것은 우리 자신에게 그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지도력이 부족 했다던가 지도층의 무능과 부패가 그 원인 이었다던가 하는 논의는 우리 민족내부의 우선 순위의 문제 일뿐, 외국이 보는 관점에는 큰 비중을 차지 않는다고 본다. 국가를 경영하는 관료 및 정치인등 모든 지도층이. 우리를 둘러싼 국제 상황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 올바르게 대처 하기는커녕 파벌의 이익을 위한 정쟁만 일삼다보니 “內憂는 깊어지고 外患이 뒤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역사의 엄숙한 교훈이다.

여하튼 한반도의 분할과 관련된 역사의 흔적을 찾기위해 우선 2차 세계대전중 일어났던 열강의 움직임을 간추려 보기로 한다.

1943년 11월27일, 카이로 선언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영국의 처칠 수상,중국의 장개석 총통등 3국의 수뇌가 회의를 갖고 "조선 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 하여 적당한 시기에 맹세코 조선을 자유롭고 독립된 것으로 할 결의를 갖는다."라고 선언.

1944년 6월6일, 구라파 전선에서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1945년 2월21일, 얄타 선언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 등 3국의 수뇌가 모여
1).독일의 무조건 항복 권유
2).소련의 대일본전 참전 합의(단, 독일의 항복후 2~3개월후)
3).U.N 구제기구 창설 등 합의사항을 발표

1945년 5월 7일, 독일의 무조건 항복.
이로써 독일의 서부지역은 연합군이, 동부지역은 소련군이 진주한다..

같은 날, 일본은 조선군 작전 지휘권을 관동군에 이양.한다
* 일본 천황은 "우메즈" 육군 참모총장으로부터 이 사실을 사후에 보고 받음으로써 나중에 알게되고 이를 반대한다. 천황은 皇土朝鮮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를 거절하자 일본의 육군당국도 결국 천황의 뜻을 받아 들이지만 한반도 분할안을 마련 하게 된다.


1945년 5월30일, 일본 육군,북조선만의 작전 지휘권을 관동군에 이양하고, 남조선은 제 17방면군 사령부에 이관한다.(일본 대본영 작전계획인 大陸命 제1340호)
* 관동군 사령부는 만주의 대련에 위치하여 2개월여 후에 일본이 항복할때 소련군에 항복하고, 17방면군은 조선 주둔군을 의미 하는데 일본 본토 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부대로써 나중에 미국에 항복하게 된다.
* 한반도의 분리개념인 북조선과 남조선이란 단어가 이미 이때 일본의 육군에 의해서 사용되고 있다.
* 일본은 얄타회담의 결과에따라 쏘련의 참전을 알고 있엇고 쏘련이 참전 하면 독일과 같이 일본 자신이 분단 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조선을 그 미끼로 활용할 전략을 구상.
*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은 쏘련과 미국의 정보망에 의하여 체크 되었을 것이고 쏘련은 청일 전쟁과 일로전쟁 사이 10년간 朝鮮의 分割을 두고 39도선이냐, 한반도 전부냐,혹은 한만 국경에 완충지대를 설치 하느냐를 두고 외교 협상을 가진적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속셈을 곧 알아 차렸을 것은 짐작 하기 어렵지 않다.


1945년6월18일,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 주재 백악관 전략회의에서 한반도에서 군사작전을 않기로 확정하고 다만 원자폭탄 개발 성공후 이를 투하후에 단독 점령하기로 결정하였음. (단 서울과 인천 그리고 군산등 3개도시로 확정.)
*미국의 점령은 남한만을 의미 한것으로 풀이 된다. 왜냐면 점령 3개도시중에 북한에 위치한 도시가 거명 되지 않았다.

1945년 6월말경, 일본은 소련과 극비리에 접촉하고 미국과의 강화 중재 요청을 함.

1945년 7월16일, 미국, 원폭개발 성공.
미국은 대일본전 단독승리 가능 판단 하고 마침내 소련의 한반도 단독점령을 우려.

1945년 7월22일, 영국의 처칠 수상, 대일본전에 소련의 참전을 반대하는 입장을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에게 전달.
*독일의 항복후 구라파 전전선에서 벌어지는 소련의 동서유럽의 분할과 동유럽에 대한 군사점령을 보고 저 유명한 Iron Curtain(철의 장막)이라는 단어를 구사한 처칠은 극동지역에서도 소련의 영토적 야망을 예견하고 이를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됨.

1945년 7월 24일, 마샬 미국 육군 참모총장, 원폭투하 작전 확정.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
미국의 트루만,영국의 에들리 수상, 중국의 장개석등3개국 수뇌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권유하고 약소국에 대한 "카이로 선언"을 준수 하기로 선언.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원폭투하.

1945년 8월8일, 소련은 일본과의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대일본전에 참전.

1945년 8월 9일, 나가사끼 원폭투하.

1945년 8월10일,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의사를 전달.
한반도 주둔 일본군 모두가 06:00시를 기해 관동군에 귀속
*일본 군부는 2개월 10일만에 또다시. 쏘련에게 한반도 점령 카드를 내 보임으로써 일본 분할을 피하려는 고차적인 군사 외교적 誘引전략을 구사 했을지도 모른다.

1945년 8월11일, 미국은 한반도 분할 38선을 채택하고 소련군의 한반도 전부 점령을 반대.(미 마샬 장군의 증언)

1945년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일본은 5일만에 또다시 38도선을 기준하여 남한은17방면군이 관장하고 북한은 관동군의 지휘하에 두도록 변경
*일본은 자신의 숨이 끊어지면서도 한반도에 대한 고도의 정치적 고려를 함으로써 한반도를 분할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 한다.

*해방이후 1947년 10월27일 주한 미군 사령관이던 "하지"도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항복하던 당시 일본 군대의 배치로 인해 연합국은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을 쏘련군에 38도선 이남의 일본군은 미군에 각각 항복 하라고 지시 했다'고 밝힌바 있다.

1945년 8월16일, 소련의 스탈린, 마침내 38선 분할에 동의 표시.
*소련은 그동안 한반도 전체를 점령 할려고 시도했으나 세불리 하자 마지못해 반쪽점령에 동의하게 된다.
*5년후 6.25전쟁에서 그 음흉한 흉계가 드러나지만.......

1945년 8월22일, 소련군 평양 입성.

1945년 9월2일, 일본, 미조리 함상에서 항복조인.

1945년 9월9일, 미국의 하지중장 인천상륙.
조선 총독 "아베"로부터 항복받고 군정실시 발표.

***위에서 본바와 같이 1945년 5월7일 독일이 항복 하던날 조선 주둔군을 관동군 지휘하 에 두었다가 23일후인 5월30일 남북한으로 나누어 관동군과 17방면군으로 지휘체계를 갑자기 또다시 바꾼 것 이라던가 8월10일과 15일 또 한차례 조선 주둔군의 지휘체계를 두고 왜 오락가락 했는지 일본으로 부터 흘러 나온 애기는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 이제는 일본이 기밀을 해제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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