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약사(略史)


  
남북의 관계는 한마디로 단정 지어 말하기는 너무도 어렵게 되어 있다. 역사적인 7.4 
남북 공동 성명이 있었지만 땅굴 공사는 계속 되어 졌다. 수많은 회의와 악수 그리고 웃음들이
있었지만 긴장은 더욱 심해 왔다. 수많은 약속들이 있었지만 잘 지켜 지질 않았다. 지난 1971년에
약속 했던 7.4 남북 공동 성명과 같이 20년이 지난 1991년에도 남북간에는 불가침 평화 협정이 있었다.
어쩌면 간단한 문제가 될수도 있다. 우리는 결국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로 
부터 해방이 있던 1945년으로 가보자. 歲月이 藥이 될수 있을런지...
   

   1945년 12월15일
             ㅡ미국,영국,쏘련등 3개국 외상들이 모여 한국문제 토의 하고 한반도를 미국,
               영국,중국,쏘련등 4개국의 신탁통치 아래 둘것을 합의하고 그 준비를 위해 
               2주 이내에 미,쏘 공동 위원회를 개최 할것을 합의.
             ㅡ그러나 이 문제는 국내에 큰 반대에 부딪혔다. 민족 진영 뿐만 아니라 좌익
               들도 반대 하였다. 좌익은 얼마 안 있어 모스코바의 지령에 의해 북한의 좌
               익과 함께 찬성으로 돌변 하였음

   1946년 2월8일
             ㅡ쏘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은 38 이북 지역에 그 자신을 중심으로 한 "북 
               조선 인민 위원회"를 구성

   1946년 2월20일
             ㅡ덕수궁에서 제1차 "미,쏘 공동 위원회" 개최..양측의 의견이 팽팽하여 결렬.

   1946년 5월6일
             ㅡ결국 무기휴회에 들어 가기로 합의.
             ㅡ좌우익의 합작을 시도 했으나 불발에 그치고 좌익들의 파괴 공작으로 사회 
               혼란은 극심 하였음.이를 틈타 인플레는 민생을 압박 하였다. 드디어 공무원
               들의 부정이 싹트기 시작 하고 조선 말기의 부패상이 되살아 나는 듯 했다.
 
   1947년 5월21일
             ㅡ미쏘 공동위, 작년 무기 휴회 한후 1년이 지나 서울에서 다시 개최 했으나 
               아무런 합의도 못보고 유엔에서 한국문제 토의 끝날때까지 무기 휴회 하기
               로 함

   1947년 10월 
             ㅡ유엔에서 한국문제 상정 토의

   1947년 11월14일
             ㅡ유엔 총회에서 한국의 독립정부 수립을 돕기 위한 임시 한국 위원단 설치안
               을 가결

   1948년 1월
             ㅡ유엔 대표단 서울 도착 했으나 쏘련은 이들의 38이북 입북을 거부
             ㅡ이즈음 남한 내에서도 의견이 양분. 즉 이승만은 남한에서라도 총선을 실시
               하여 독립 정부 설립을 주장 한 반면 김구는 남북 협상 하고 외국군 완전 
               철수 후 선거 실시 주장.

   1948년 2월25일
             ㅡ 미국의 유엔 대표가 "가능한 지역내의 총선" 실시안을 제안 가결.
                쏘련은 거부.

   1948년5월10일 
             ㅡ남한에서(38선 이남) 총선거 실시.
             ㅡ북한 의석 100석을 제외한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을 선출,5월31일 개회.
 
   1948년 8월15일
             ㅡ대한민국 건국 내외에 선포

   1948년 9월9일 
             ㅡ북한 38 이북지역에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건국 

   1948년 12월 9일
             ㅡ유엔 총회는 46:6으로 대한민국 승인

   1949년 봄
            ㅡ미군 철수 시작하여 

   1949년 6월말
            ㅡ미군 철수 완료하고 소수의 군사 고문단만 잔류.        

   1950년 6월25일
            ㅡ한국전쟁(6.25사변,한국동란,남북전쟁) 발발
1) 6.25 전쟁 동영상
2) 6.25 전쟁 동영상
3) 6.25 전쟁 동영상
4) 6.25 전쟁 동영상
5) 6.25 전쟁 동영상
6) 6.25 전쟁 동영상
7) 6.25 전쟁 동영상
8) 6.25 전쟁 동영상
9) 6.25 전쟁 동영상
10) 6.25 전쟁 동영상
11) 6.25 전쟁 동영상
12) 6.25 전쟁 동영상
13) 6.25 전쟁 동영상
14) 6.25 전쟁 동영상
15) 6.25 전쟁 동영상
소련제 탱크등 기계화부대를 앞세운 북한군의 선발부대가 서울로 들어오고 있다.

일가족이 38선 경계선상에서 남쪽을 택하여 피난하고 있는 모습.

전쟁고아(1950년9월28일)

전쟁고아,이소녀의 운명은?

버려진 전쟁고아

처절한 모습의 전쟁고아

포로가 된 북한 소년병들

학살 시신앞에서 통곡

폐허가 된 서울, 정면 뒷편에 인왕산이,오른쪽 뒷편에 옛 중앙청 첨탑이 보인다.

폐허속에서 뭘 찾을까?

그땐 우리 모두 거지였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뒷편에 중앙청이 보인다.

중공군 개입으로 유엔군 38선통과 퇴각

흥남 철수작전,미군의 수송선을 타기위해모여든 피난민.

14,000여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남으로 향하는 미군 수송선 "메레디스 빅토리"호.

전쟁의 비극.일가족이 폐허속에서 노숙하고 있다.

피난민촌(1951년 부산에서)

압록강 기슭 혜산진에 먼저 도착하여 만세를 외치는 국군 선두부대. 이도 잠시뿐 중공군의 참전으로 곧 1.4후퇴로 불리는 퇴각이 시작 되었다.

참전 중공군을 위문하는 김일성.

참전 미군을 위문하는 "마릴린몬로"

야전 짚차를 탄 "마릴린몬로"

미군 위문중인 코미디언 "밥호프"

"트루먼" 미 대통령, 국가비상사태안에 서명(1950.12.16)

1950년 6월27일 ㅡ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개최,북한의 침략을 응징 하는데 필요한 원조 하기로 의결.6월말까지 32개국이 원조 결정. 1950년7월7일 ㅡ유엔 결의에 따라 유엔군 총 사령부를 일본 도꾜에 두기로 하고 맥아더 장군 을 사령관에 임명. 1951년 6월말 부터 전선 교착 상태. ㅡ휴전회담 시작 1953년 7월27일 ㅡ유엔군과 북한군, 중공군간에 휴전협정 조인 ㅡ본 협정이 맺어지기 까지 2년 19일 동안 무려 1,076회에 걸친 회합을 가짐. ㅡ현 접수선을 군사 분계선으로 하고 이를 중심으로 2km씩 남북으로 후퇴하 여 모두4km의 비무장 지대 설치를 합의 ㅡ회담 장소인 판문점의 위치. 서울에서 65km 북쪽에,평양에서 남쪽으로 215km 지점 1954년 2월. ㅡ미 8군 사령관의 직권으로 군사 작전과 군사시설 보호 및 보안을 목적으로 민간인의 귀농을 규제 하는 귀농선(歸農線)을 설정 1955년 부터 ㅡ영농을 개별적으로 허가 하고 제한적 영농 활동이 이루어 짐 1958년 6월. ㅡ귀농선을 민통선(民統線, 민간 통제선-Civillian Controll Line)으로 그 명칭을 바 꿈 1967년 들어와 정부가 주도적으로 집단 영농 정착 계획 실시. ㅡ그 결과 민통선 북부지역에는 1999년 현재 대성동 자유의 마을을 포함하여 입주마을은 경기도에 42개 마을에 3216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강원도에는 19개 마을이 있는 것으로 집계 되고 있다. 1999년 6월15일 남북 해군 서해상 NLL해상에서 교전 (1차 서해교전) ㅡ북한 해군은 10여척의 전함을 동원, 연평도 인근 NLL해상에서 우리 해군에대해 도발 해옴으로써 양측 모두 피해를 입음. 북한은 40톤급 어뢰정이 침몰하고 전투함 2척이 크게 파손, 사상자도 20명이 넘는것으로 추산. 아군은 전투함 2척이 약간 파손되고 장병9명이 경상을 입음. 2000년 6월13일 ㅡ<남북 정상 회담> 김대중 대통령과 김 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남북의 신뢰구축 방안에 합의. 군사 직통전화를 가설하고,이산가족의 상봉을 정례화 하며, 끊어진 철길중 우선 경의선을 복원 하기로 합의. 2000년 6월15일 ㅡ<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남북 공동 선언서>발표 남북 분단 55년만에 남북의 정상들이 처음으로 만나 첫째,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둘째, 1국가 2체제의 통일방안 협의, 셋째, 이산가족 문제의 조속한 해결, 넷째, 경제협력 등을 비롯한 남북간 교류의 활성화와 다섯째 이상의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한 당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키로 한다는 내용으로써, 6.15 남북공동선언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 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 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2000년 9월28일 ㅡ<유엔사> 경의선 복구와 관련하여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DMZ 관할권을 한국에 이전 할것을 긍정 검토 한다고 발표. ㅡ<남북 국방장관 회담> 경의선철도및 도로 연결 위한 DMZ 개방원칙 합의. 2000년 11월16일 ㅡ<유엔사> 경의선 복원공사와 개성 문산간 왕복 4차선 통과 지역의 비무장 지대에 관한 행정적 관리권을 남측에 이관. 2001년 2월 ㅡ<남북간 첫 군사 실무회담> 2000년 9월의 남북국방장관 회담의 후속 실무 회담. 2002년 2월20일 ㅡ<부시 미국 대통령 DMZ 방문> 부시 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경의선 연결공사 현장인 도라산 역을 방문하고 DMZ 철책선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서 브리핑을 받고 가설 철도 침목에 통일 기원하고 서명. 2002년 6월29일 ㅡ<남북 해군 서해 교전>(2차 서해교전) 오전 10시25분부터 10시56분 상황이 종료되까지 약 30분간 남북의 해군 고속정간에 교전. 함포사격까지 동원된 이날 교전은 NLL(서해 북방 한계선)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부근 해역에서 발생. 이 해전으로 아군 4명 전사,1명 실종, 20명이 부상 했다고 국방부가 발표. 2002년 9월12일 ㅡ<유엔사-북 장성급 회담> 동해선 복구와 관련 DMZ개방 논의 2002년 9월19일 ㅡ남북간 군사보장 합의서 타결에 따라 DMZ 지뢰제거작업 동시 진행. 2002년 9월24일 ㅡ남북간 군사 HOT Line 개통. 전화와 팩스 각1회선 설치. 2002년 11월 ㅡ지뢰제거 작업 상호검증과 군사분계선 통과절차를 둘러싸고 남북과 유엔사 갈등. 지뢰제거 공사 중단. 2003년 6월14일 ㅡ<경의선과 동해선 연결공사 완료> 남측의 조명균 교류협력 국장과 북측의 김명칠 국토환경 보호성 국장이 참석하여 공사완료 기념식을 가짐. ***경의선은 1906년 서울과 신의주간의 518.5km가 개통 되었으며 1945년 해방후부터 북한의 38선 경비대가 왕래를 막을때까지 수개월간 개성과 서울까지 74.8km만 단축 운행 되었다가 1950년 6.25전쟁으로 전면 중단 되었음. ***동해선은 1936년 북한의 안변과 강원도 양양까지 192.6km가 개통 되었으나 전쟁으로 중단 되었다가 이번에 연결. ***이로써 경의선은 260m, 동해선은 약 100m의 폭으로 DMZ가 개방 되었음. 2004년 6월15일 ㅡ6월15일0시를 기해 남북 상호 비방 선전방송 일제히 중단. 2004년 7월7일 ㅡ2000년 9월에 있었던 남북 국방장관 회담이후 다시 제2차 남북 장관급 회의를 열것을 합의. 2005년 7월20일 ㅡ<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DMZ내의GP(최전방 초소)를 공동철수 하자고 실무급 회담을 가졌으나 북한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음. 2006년 10월9일 ㅡ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1차 핵실험 단행.(리히터 규모 3.6)실시 2006년 12월 11일 ㅡ<유엔사> 전시작전 롱제권 이양때 유엔사가 맡고있는 20여개의 한반도 정전협정 관리기능중 대부분을 한국측에 이양하고 싶다는 의사를 한국정부에 전달. 2006년 12월29일 ㅡ<북한 노동신문> 군사분계선 남쪽에 설치된 콘크리트 장벽 해체 요구. 1977년부터 DMZ 240km 구간에 인공적인 민족분열의 콘크리트 장벽을 쌓았다고 주장. (***DMZ의 주요 전차 접근로에 설치된 방어벽 수준의 군사 시설물을 지칭한듯) 2007년 5월17일 ㅡ<남북 철도 시범 운행> 경의선과 동해선, 분단이후 처음으로 DMZ내의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운행.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공사를 완료하고 기념식 가진지 약 4년만에 1회성 시범운행 가짐. 2007년 10월2일 ㅡ<노무현 대통령 북한 방문> 10월3일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DMZ와 NLL(서해북방 한계선)일대를 평화구역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제의. ***노무현 대통령이 군축과 관련하여 DMZ내의 GP(최전방 초소)철수를 제의 했으나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DMZ문제는 아직 빠르다는 견해를 피력. 2007년 10월4일 ㅡ<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소위 "10.4선언"을 발표> 1. 남.북은 6.15 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2. 남.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한다. 3. 남.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4. 남.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5. 남.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 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6. 남.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7. 남.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북은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제1차회의를 금년11월중 서울에서 갖기로 하였다. 남.북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2007년 11월7일 ㅡ<김장수 국방장관과 게이츠 미국방장관의 한미 국방장관 회의> NLL의 재설정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합의. DMZ관리는 2012년 전작권이 한국군에 이양시점부터 대폭 한국군에 넘기기로 합의. <이양대상임무>1.DMZ출입및 승인 2.DMZ내 사건 사고 조사 3.DMZ 월경방지 시설및 군사표식물 설치 2008년 4월7일 ㅡ 국방부 군당국이 군사분계선 10km이내지역의 사유지 매입 추진(토지 매수 청구권 금년 9월부터) 대상지: MDL(군사분계선)10km이내 지역 소재 군사시설 통제보호구역, 또는 탄약고 주변의 제한보호구역 내에 있는 토지 가운데 쓸모 없는 땅에 대해 소유자가 군 당국에 매입을 요청할 경우 이를 사들인다는 것이다. 2008년 11월28일 ㅡ 군사 분계선을 통과하여 남북간의 문산과 봉동역을 운행하던 열차가 개통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운행중단. 작년 12월 시작된 남북간의 열차운행은 6.25전쟁 발발이후 56년만에 개통 되었으나 북한의 군사분계선 통행제한 조치에 따라 이날 중단된 것이다. 2009년 3월3일 ㅡ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군당국은 6년6개월만에 장성급 회담을 열었으나 "한미연합연습"에 대한 북한의 항의로 30분만에중단. 2009년 5월25일 ㅡ 북한의2차 핵실험 단행.(리히터 규모 4.5)함북 길주에서. 2009년 11월10일 남북 해군 서해NLL해상에서 3번째 교전 ㅡ 북한 경비정 한척이 NLL을 넘어 왔으며, 아군의 수차에 걸친 경고방송을 무시하고 계속 북상하지 않아 경고사격을 가하자 북한군은 우리측에 정조준 사격을 가함으로써 발생. 북한 선박은 대파된채 북상, 아군은 피해경미. 2009년 11월19일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ㅡ 북한이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수 없는 비핵화 약속을 이행 한다면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고 경제지원을 검토가능 하다고 발표. 2009년 12월31일 남북간 그랜드바겐 논의를 위한 한반도 신 평화 구상 ㅡ 이를 위해서 "한반도 미래협력대화"(KFDC)를 창설하고 2010년 가을 주변국 정부인사와 국제문제 전문가초청 첫회의를 갖기로. 2010년3월26일 천안함 폭침사건


두동강난 천안함의 처참한 모습

해군 초계함 772호가 백령도 인근해역에서 두동강 난채 침몰하는 사태가 발생 . 2010년 4월18일 ㅡ 북한, 천안함 폭침사건과 무관함을 공식 발표. 2010년 4월19일 ㅡ 여야, 국회 국방위서 천안함 침몰샤태와 관련해 뚜렷한 시각차 보임. 2010년 7월22일 ㅡ 한미 2+2회의 참석차 방한한 "클린튼" 미 국무장관과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 Joint Security Area)를 방문하고 "오울렛"GP(6.25참전 미 보병사단의 오울렛 일병을 기념한 GP)와 켐프 "보니파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의 희생자 보니파스 병사를 기념)를 찾아 분단현실과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 2010년 9월13일 천안함 침몰사건 국제민군 합동 조사단. ㅡ 천안함 폭침사건의 최종 보고서를 발표. 이에 의하면 잠수함이 발사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제 CHT-02D음향유도어뢰의 수중 폭발로 인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에 의해 선체가 절단 침몰 했다고 발표. 2010년 11월23일연평도 포격사건


북한 해안포 발사로 불타는 연평도

ㅡ 이날 오후2시30분경 연평도가 북한으로부터 무차별 포격당하는 사건이 발생. 해병대 기지뿐만 아니라 민간인동네에도 무차별 포격함으로써 민간인 2명을 포함하여 수명의 해병대 장병도 전사 하였음. ㅡ NLL을 무력화해서 수도권을 단숨에 위협할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북한의 욕망과 3대세습을 공고히 하기위한 책략의 소산으로 6.25 전쟁이후 최대의 남북교전으로 정전상태하의 남북관계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충돌사건. ㅡ 김태영 국방장관이 경질되고 김관진 신임국방이 취임일성으로 추가도발시 근원지에 대한 미사일과 공군에의한 즉각적인 대북보복공격을 선언. 2011년 2월8일 "남북군사실무회담" 개최 ㅡ 남북 군사 고위급 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회담이 8일과 9일 양일간에 걸쳐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 에서 열렸으나 본회의 의제와 참석자 체급에 대한 이견으로 결국 결렬. 2011년 6월17일 국방부 ㅡ 평양을 사정권안에 둔 "전술 지대지 미사일"(ATACMS)일부를 DMZ인근에 배치. 2011년 6월29일 "제임스 셔먼"신임 한미 연합 사령관겸 주한 미군 사령관 ㅡ "전쟁과 붕괴의 복잡한 과제들에 대비해 계획을 갖추고 준비 하는것은 억지와 방어, 정전협정 유지의 기반을 제공 해주는것"이라는 메시지 발표. 2011년 8월11일 독일 슈피겔지 ㅡ한국의 DMZ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경선이라고 특집 게재. 2011년 9월15일 미군사 전문지 "성조" ㅡ 한국과 미국은 북한지역 감시를 위해 고고도(高高度)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를 DMZ인근 상공에 배치계획. 2011년 11월30일 러시아 "알렉산드로 티모닌"특명대사 남북한과 러시아가 논의중인 북한 경유 가스관과 관련 북한지역 통과구간의 건설비용은 전액 러시아가 직접 부담 한다고 발표. 러시아 국영회사 "가즈프롬"이 약 700km에 달하는 북한통과구간의 가스관 건설비용을 전담하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 된다면 2017년에 한국에 가스공급 가능. 2011년12월17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북한방송은 김정일 위원장이 12월17일 오전 8시30분 급성 심장경색으로 사망 했다고 12월19일낮 정오 방송에서 발표. 장레식은 12월 28일이며 외국의 조문은 받지 않겠다고 보도. 포르투갈인이 운영하는 "무언가를 보고있는 김정일"이란 제목의 김정일 사진 사이트를 소개 합니다. 2012년3월25일 오바마 미국대통령 DMZ 방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도착한 그는 정승조 합참의장과 제임스 셔먼 주한미군사령관의 영접을 받은뒤 "캠프 보니파스"에서 북한지역을 망원경으로 바라 보고 "주한미군은 자유의 경계선에있다."고 말했다.

DMZ를 방문한 "Obama" 미 대통령

2012년6월15일 주한미군 주한미군이 포병부대의 한강이북 잔류를 타진. 북한공격때 신속대응 위한 한반도 안보의 적극개입 의지를 밝혀. 당초 2016년까지 동두천에서 평택으로 재배치 예정이었으나 미제2사단 포병여단을 동두천 잔류방안을 우리군에 타진한것으로 보인다. DMZ인근의 북한 장사포가 서울등 수도권기습 공격시 신속대응이 어렵고, "서먼"주한 미군 사령관이 최근 2015년 12월 전시작전권을 한국군으로 넘긴뒤에도 한미연합사를 계속 유지하자고 한 비공식 제안과 맥락을 같이 한것으로 풀이. 2012년7월19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북한과 맺은 약속도 지켜야한다고 주장. 다만 노무현 전대통령의 임기말에 김정일과 합의한 10.4선언에 대해서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발언. 서해공동어로 수역설정과 북의 철도와 고속도로건설은 과다 재정소요(최대 약50조 예상)와 국회동의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2012년7월24일 주한 미군 아프칸에서 활동했던 MRAP(Mine Resistant Ambush Protected,특수지뢰방호차량) 5대를 주한 미제 2사단에 배치하고 지뢰매설이 많은 DMZ와 산악지역에서 작전 수행 하기로. 2012년8월7일 미 대통령 산하 국제안보 정책센터 북한 붕괴로 미국과 중국간의 군사충돌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 "제임스도빈스"랜드 연구소의 본 센터장은 북한 통제력이 무너지면 수백만 북한 주민들의 중국으로의 대량이주발생하며 이는 중국 심양군구의 대병력의 북한진주를 야기하고, 한국과 미군의 북한점령을 막기위해 DMZ북쪽에 선제파병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 한반도의 통일이냐 분단유지냐의 갈림길이 될듯. 2012년10월15일 경기도와 파주시 그리고 육군1사단과 경기관광공사 양해각서 체결. 파주에 위치한 미군주둔 "캠프그리브스"를 안보체험관광지로 재탄생 시키기로. 관련기사
2012년10월27일 18대 대통령 후보자 강지원씨 유엔본부 혹은 유엔 아시아본부등 유엔 핵심기구를 DMZ에 유치하겠다고 공약. 2012년11월2일 18대 대통령 후보 안철수씨 소위"환경 에너지정책"을 발표하면서 DMZ의 남북한 공동관리 하면서 DMZ를 평화지대로 만들겠다고 공약. 또한 임진강, 북한강등 남북공유하천을 공동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발표. 2012년12월3일 18대 대통령후보 문재인씨 DMZ안에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남북공동으로 건설 공약. DMZ내의 지뢰를 제거하고 철조망철거해서 크로스컨트리 경기시설을 남북한 공동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 2013년 2월12일 북한 3차 핵실험 단행. 함북 길주군 소재 핵실험장에서 TNT 폭약 6~7천톤으로 추정되는 핵실험 실시. 독일정부 산하 "연방지질 자원연구소(BER)"는 폭발력이 4만톤에 이른다고 발표. 이는 지진규모 (MB,Magnitude Body:인공지진)5.2에 해당한다고 발표. 한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이번 북한의3차핵실험 폭발력은 8천톤에서 1만톤으로써 지진규모 MB 4.9에 해당한다고 발표. 2013년4월29일 개성공단 폐쇄. 북한의 개성공단 5만여명의 근로자들이 4월9일 완전 철수한데 이어 우리측도 입주기업체 직원및 KT와 한전 관리 인프라담당 50여명등 전원이 남한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8년4개월 동안 남북경협의 상징물이 없어진 셈이다. 2013년5월9일 박근혜대통령 미국의회에서 초빙연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5월8일(미국의 현지시간)미국의 의회연설에서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를 세계의 평화공원으로 만들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2013년7월27일 박근혜 대통령. "DMZ세계평화공원"조성을 다시 언급. 6.25 전쟁의 정전 60주년 기념식에서 DMZ는 본래의 목적과 달리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이라고 지적하고, 이제 DMZ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진정한 비부장지대가 되기 위해 DMZ내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미국과 세계가 우리와 함께 나서 주기를 호소했다.

박 대통령 왼쪽 첫번째에 한국을 방문한 "존 키" 뉴질랜드 수상과 네번째에 "성김" 주한 미국대사의 모습도 보인다.


2013년7월27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 "6.25 전쟁은 한국이 승리"한 것이라고 평가.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써는 처음으로 참석하여 남북한의 현재 실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역설.

오바마 대통령은 5천여 청중 앞에서 이 전쟁은 2차대전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첫대결이라고 그 역사성을 부여하고, 미국국민들에게 한국전쟁을 기억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전쟁은 잊혀진(Forgotten) 전쟁이 아니라 명예로운(Honored) 전쟁이라고 이틀전 미의회에서 말한바 있다.


2013년8월15일 박근혜 대통령. "DMZ세계평화공원"조성을 세번째 언급.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8월15일 광복 제68주년을 경축하는 기념식을 맞아 분단과 대결의 유산인 DMZ에 평화공원 조성을 북한에 공식 제의했다.
2013년10월11일 군 당국. 2000년이후 탈북 귀순자들로부터 확보한 땅굴관련 첩보에따라 해당 철원과 개성을 비롯한 MDL (군사분계선)과 DMZ일대에 대한 대남 침투용 땅굴 굴착 증언을 확보. 현재 조사를 진행중이라고 발표. 2013년12월6일 조 바이든(Joe Biden)미국 부통령. "한국의 영구적 분단을 허용 않겠다."고 단호히 언급. 연세대 신촌 캠프스에서 개최된 1000여명의 연세대 학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음.
Joe Biden 미국 부통령


2014년 1월6일 박근혜 대통령. 미국과 중국, 러시아 정상들과 남북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언급. DMZ평화공원 건설은 남북간의 불신과 대결의 장벽을 허물고 유라시아로 뻗어 나가는 철도 연결의 시금석이 될것이라고 강조.
박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14년 2월6일 국방부. 북한이 DMZ평화공원 수용시 지뢰제거등 DMZ의 비무장화등의 군사적 보장조치 할것. 통일부는 년내 DMZ평화공원 게획을 북한에 제의 하기로 발표. 2014년2월19일 국토부 업무보고. 통일대비 국토계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DMZ평화공원 조성방안과 남북 유라시아철도 연게방안을 년말까지 마련게회이라고 보고. 통일부와 협업하여 입지와 규모및 개발방식등을 담은 구체적 DMZ평화공원조성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보고. 2014년 2월20일 문재인 의원. 북한을 제외하고 DMZ 평화공원은 이루어질수 없는것.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대화에 속도를 당부. 그렇지않으면 통릴대박은 중국것이 된다고 주장. 통일은 대박의 개념이 아닌 적금의 개념으로 접근할것을 주문. 2014년 7월8일 국방부 지난달 19일 오후2시 조금지나 파주지역 DMZ에 북한군 병사2~3명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우리군 진지에 설치된 "귀순자 유도벨"을 누르고 표지판을 뽑은뒤 도주했다고 국방부가 발표. 아군 GP와 유도벨이 설치된 철책사이의 거리는 약 700m. 2014년 7월8일 북한군 북한은 올들어 군사분계선을 5차례 월경한 것으로 확인. 이는 김정은의 지시로 DMZ내 매복 기습침투등 훈련을 강화하는 것으로 분석. 2014년 7월13일 북한군 개성인근 DMZ부근에서 새벽 1시20분과 1시30분 사이 두차례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 2발 발사.비행거리500Km로써 동해상에 떨어짐. 2014년 7월15일 북한군 이날 오전 11시43분과 오후12시15분 사이에 고성 DMZ인근 해안에서 240mm 방사포 (다연장 로켓)와 해안포 100여발의 포사격을 실시. 2014년 8월7일 박근혜 대통령 DMZ평화공원구상은 "긴장과 대치의 상징인 DMZ에 평화공원을 조성한다면 세계에 한반도 통일의 시작을 알리고 긴장완화를 위해서도 매우 의미있는 사업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8월15일 박 대통령 69주년 8.15 경축사에서 남북간 생태계의 환경협력을 북한에 제안. 또한 문화유산의 공동발굴 사업도제안. 2014년 9월1일 독일 환경생태 학자. 독일의 환경 저널리스트이자 생태학 박사 "캐롤라인 뫼링(M"ohring)여사는 옛 동서독이 했듯이 환경분야 같은 소프트한 분야부터의 남북한협력을 당부. 또한 인간의 발길이 전혀 닫지 않았던 DMZ를 세계의 평화공원으로 조성하려는 정부의 계획을 높이 평가. 2014년 10월4일 북한 고위층 3인방 방남. 아침 10시경 북한권력 2,3,4위인 황병서 군총정치국장, 최룡해 당비서,김양건 대남담당비서등 3인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인천공항도착 입국했다. 김정은의 전용기로 내한한 이들은 우리측 국무총리와 통일부장관, 여야대표들을 만났다. 황병서등과 남북간 고위급 접촉을 약속하였다. 이들은 폐막식 참석후 밤 10시 좀 지나 전용기로 북한으로 귀환, 2014년 10월7일 NLL서 해상교전 오전 9시50분경, 북한 경비정 1척이 서해 NLL을 약 900m 남하하여 침범. 우리군의 경고사격 이후 대응사격으로 으로 맞서다가 퇴각한 사건이 발생. 이는 2009년 대청해전이후 5년만에 남북한 함정의 기관포사격을 주고받은 해상교전을 벌임. 2014년 10월10일 북한군, 대북전단 풍선에 대공포 사격. 이날 오후2시경, 민간단체가 연천에서 날린 대북전단 풍선이 북한군의 14,5mm대공 기관총 사격을 받았다.모두 10여발로 추산되는 총탄이 DMZ인근 민통선 민간인 지역에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우리군도 40여발의 대응사격을 실시. 오후6시까지 남북 GP간에 수십발의 총격전 발생. 2015년 7월27일 러시아 철도공사 "블라디미르 야쿠닌"사장 한국의 "경원선 복원사업"을 지지한다고 강조.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야쿠닌"사장은 26일 한국의 "유라시아 친선특급"행사단이 모스크바역에 도착했을때 직접 플랫홈에 나와 환영. 한반도 종단철도건설 운행은 바로 푸틴의 생각이라고 강조. 2015년 8월4일 DMZ에서 이날 07시경 북한이 목함지뢰 도발. 우리측 하사관 2명 부상. "관련 동영상" 2015년 8월5일 박근혜 대통령 경원선 복원공사 기공식 참석. 경원선은 서울과 원산을 잇는 철길. 총223.7km로써 일제시절인 1914년 개통 됐다가 1945년 남북분단과 함께 단절. 1단계 복원공사는 백마고지역에서 남방 한계선 월정리역까지의 9.3km로써 단선으로 복원계획. 2단계는 월정리 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2.4km를 지상으로 연결할 계획. 2015년 8월11일 우리측 대북 확성기 방송 개시. 북한의 DMZ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우리측의 보복성 심리전 개시. 2015년 8월20일 북한은 연천 DMZ지역에 두차례의 고사포및 직사포 포격감행. 우리측도 155mm 자주포 29발 DMZ북쪽에 대응사격. 북한은 이날밤 중앙군사위를 소집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은 선전포고라고 주장하며 준전시를 선포. 이에대해 박대통령 적 도발시 가차없이 응징할것을 명령. 특히 "선조치 후보고"할것을 주문. 6.25전쟁후 최고수준의 남북긴장관계가 조성되고 일촉측발의 위기감 고조. 2015년 8월25일 북한은 준전시상황을 조성한 그날(8월20일), 남쪽에 대화할것을 제의 결국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장관과 북쪽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김양건 대남비서등4명이 무박4일동안의 마라톤 협상끝에 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북쪽의 "유감"표시와 "대북확성기방송 중단"을 합의

2015년 9월3일 박근혜 대통령 중국 전승절(戰勝節) 70주년 열병식 참석
중국 군대 행사

2015년 9월26일 아시아 기자협회 본협회 27개국 기자들이 조선일보에서 주관하는 "통일 나눔 펀드"에 정기적 기부를 약속. 이란의 문화잡지 "쇼크란" 발행인 "푸네 네다이"씨는 "서울에서 육로나 비행기로 평양을 오가는 꿈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고 피력. 2015년12월29일 북한의 대남비서 김양건이 사망했다고 북한매체가 발표. 그는 새벽 06시 15분에 교통사고로 사망 했다는데,그의 전임인 김용순도 2003년 6월 사고사 했음. 2016년 1월6일 북한 4차 핵실험 단행.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규모4.8의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 조선중앙 TV는 첫수소탄 시험이 완전히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기상청에 따르면 6일 오전 10시 30분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북쪽 49㎞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4.8 지진이 감지됐다. 구글어스 위성사진으로 본 지진의 진앙지와 핵실험장. 위쪽 붉은 원은 진앙지이고, 아래쪽은 풍계리 핵실험장으로 두 곳의 거리는 약 3㎞ 정도다. /연합뉴스·구글 연합뉴스
2016년 1월19일 김정은은 죽은 김양건의 후임으로 도발 총책인 김영철을 대남비서로 발탁. 그는 그동안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DMZ지뢰폭발 사건등 일련의 대남 도발의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슴. 2016년 3월 3일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직후 동해상으로 단거리 발사체 6발을 발사하는등 무력시위르 자행. 미사일은 100~150km 비행 한것으로 군당국은 파악. 2016년 6월27일 주한미군 주한미군은 북한의 미사일 탐지추적을 위해 최신예 무인기(드론)를 투입 계획. 리퍼(MQ-9)로 불리는 무인기는 최신형으로 200km 떨어진 곳에서도 추적이 가능하며 체공시간도 더욱 연장된 것으로 10시간 이상 가능. 2016년 7월 4일 군당국 북한의 DMZ지역의 지뢰매설은 작년의 2배 수준으로 예년의 2,000여발에서 4,000여발을 매설한것으로 파악. 2016년 9월 9일 북한 5차 핵실험 단행. 북한은 풍계리 일대에서 5차 핵실험을 단행 했다고 발표. 북한은 이번 핵실험은 핵탄두의 위력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을 단행했다고 발표.
5차 핵실험


2016년 9월22일 북핵문제 미국이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군사적 대응조치로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를 한반도 상공에 전개하고 무력시위. 한반도 상공을 수십분 비행후 괌기지로 돌아감. 2017년 3월17일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 미국무장관은 한국의 첫방문에서 곧바로 판문점으로 이동. "지난 20년간 북한을 비핵화 하기위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했다."고 진단하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 또한 중국의 역할을 주문했다.
판문점에 선 "틸러슨" 미 국무장관. 뒤에 북한 판문각이 보인다.

2017년 3월18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중국이 북핵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북한이 미국을 갖고 놀았다고 트윗에 공개.
Trump twitter

2017년 9월3일 북한 6차 핵실험 단행. 북한은 2017년9월3일 12시30분(한국시간) 제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 수소폭탄 실험으로 ICBM과 함께 북한의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공표.



2017년 10월23일 미 전략폭격기 B-1B, 동해NLL 북상 비행.


"관련 기사"
2017년10월27일.               

"매티스" 美 국방장관 JSA 방문


James Mattis 미 국방장관이 2017년 10월27일 판문점 JSA를 방문하고 " 우리의 목표는 전쟁이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라고 말하고 있다.옆에 송영무 국방장관이 이를 지켜보고있다.
"매티스"장관은 또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2017년11월11일.               

미 항모 3척 동해서 합동훈련


미 항모 3척이 우리 해군과 합동 훈련을 위해 동해상을 항해하고 있다.(2017년11월11일) 왼쪽부터 "레이건"함, "니미츠"함, "루즈벨트"함이 각기 구축함과 이지스함등과 함께 전단을 꾸려 항해중이다.
한반도에 한사람의 존재만 없다면 자유와 번영의 선택을 한국인 스스로가 만들어 갈수 있다. 김정은은 국민과 국가의 생존보다는 권력의 생존을 우선시 하고 있다. 한반도의 불행은 바로 김일성 일가의 세습 전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불합리에 근거하고 있다. 이 악성종양을 제거하지 않고는 한반도의 안정은 불가능 하다.



2017년 11월13일 
유엔사령부 발표.
2017년 11월 13일 15시10분경 북한군 병사 1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했다고 발표.
"관련 동영상" 귀순병사는 탈출과정에서 북한 경비병이 사격한 여러발의 총탄을 맞고, 유엔사 소속 헬기로 아주대병원으로 긴급후송 되었다. 보도에 의하면 11월22일 현재 두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거쳐 의식을 회복하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last updated: 2017.11.22) (계속 보강 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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