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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류(逆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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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블로그 글중에서 하나를 올려봅니다.
요즘은 중국의 시대란 말을 자주 접합니다.
중국은 과연 우리민족에게 어떤 나라 일까요.

동북공정이란 해괴한 논리로 우리의 고대사를
문자 그대로 짓뭉개고 있습니다.
우리의 남북분단을 최대한 활용하여 북에게는잡았던 손을
느슨하게 하고 남에게는 윙크까지 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남북간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최대의 수익자는 누가 될까요.
남북이 다 망가지면 한반도는 누구의 영토가 될까요.





역 류(逆 流)


“연(燕)은 동쪽으로 조선(朝鮮), 요동(遼東)이 있고 북에는 임호(林胡), 루번(樓煩)의 두 호국(胡國)이, 西로는 운중(雲中)과 구원(九原)의 땅이 있고 南으로는 호타(嘑沱), 역수(易水)의 두 강물이 있습니다….” 춘추전국(春秋戰國)시절 소진(蘇秦)이 연(燕)의 문후(文候)를 만나 자신의 합종책(合從策)을 설명하는 첫마디에 나오는 문구이다. 북쪽의 임호나 서쪽의 운중 그리고 남쪽의 호타는 연나라의 수도, 자성(鰦城, 지금의 북경부근)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지역의 지명이다. 따라서 蘇秦의 설명은 수도 자성으로부터 가까운 곳을 먼저 거명하고 먼 곳이 나중에 거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조선의 위치는 요동과 자성의 중간지역을 일컫고 있는 것이다. 요하(遼河)를 중심으로 서쪽을 遼西, 동쪽을 遼東이라 불리는 것을 감안하면 遼河의 하류에 위치한 현재의 진황도(秦皇都) 서쪽에, 즉 요서지방에 우리 한민족 조상의 나라인 朝鮮(역사책에선 古朝鮮이라 칭함)이 실재 했음을 확인 해준다. 조선과 중국의 경계선은 분명히 요하의 서쪽에 있었음을 가리킨다.



중국 최초의 역사서인 사기(史記)의 “소진(蘇秦),장의(張儀)編”에는 소진의 합종책에 맞서 장의의 연형론(連衡論)이 전국시대의 열국(列國)간의 “서바이블” 군사 외교전을 그리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칠 줄 모르는 침략의도를 가진 중원의 서쪽강국 진(秦)나라에 있음이다. 탐욕한 강대국 秦을 누르고 열국을 존속 시키기 위해 남북으로 위치한 연(燕), 조(趙), 제(齐)등 6국이 合從策을 받아 들이고, 秦은 連衡術로서 合從의 맹약을 맺은 열국을 흐트러뜨리려 한다. 秦의 혜왕(惠王, 재위기간 BC325~312)은 현상을 유지하는 연형론 보다는 “나라를 부유하게 하려면 그 땅을 넓히기에 힘써야 한다.”는 사마착(司馬錯)의 침공(侵攻)의 논리에 더 무게를 둔다. 그는 혜왕 앞에서 張儀를 논박하고 자주 논쟁을 벌였던 張儀 이후의 秦의 책사(策士)이다. 중국의 “땅 불리기”는 아마도 이때부터 “확장 DNA”로 변형되어, 지금 21세기에도 면면히 이어오는 중국의 국토에 대한 전통적인 정책 유전자로 고착화 된 것이 아닌가 한다.



秦 나라의 시황제(始皇帝, 재위기간 BC246~210)는 즉위 11년째부터 모든 군사력을 동원하여

한(韓), 조(趙)등 열국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기원전222년에는 燕나라를, 221년에는 齐나라를 멸망 시켜 소위 중국을 통일하게 된다. 100여년간 중국대륙을 팽팽한 세력 균형의 평온으로 이끌었던 合從連衡, 그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때 史記는 “燕王 희(喜)는 遼東으로 달아나고 왕전(王翦, 장수이름)은 燕의 國都 자(鰦)를 평정하고 돌아 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연왕이 도망갔다는 지명에 조선이라는 말이 빠져있다. 분명 조선을 거쳐야 요동으로 도망갈수 있었을 터인데…. 아니면 조선은 이미 燕나라에 의해 요동지역으로 밀려난 것인지, 혹은 遼西지역이 燕과 朝鮮, 흉노와 몽골이 혼재된 상태였는지, 또는 遼河의 범람과 홍수등 자연재해로 인한 공(空)터였는지 필자는 어떤 자료에도 아직 접근하지 못했다. 아무튼 소진, 장의 시절 훨씬 이전부터 요서지역을 관할하던 조선이 시황제 시대에 요동으로 밀려난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BC770~BC221) 이전, 각기 수백년씩 지속했다는 중국의 세 왕조 하(夏), 상(商 혹은 은(殷), 주(周)나라 시절, 周의 武王에게 패한 商나라 왕족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망명하게 된다. “기자는 조선의 단군(壇君)을 가리켜 천(天)이라 하고, 단군으로부터 전수한 것을 천(天)이 수(授) 하였다 함이니, 이는 단군을 天의 대표로 보는 까닭이고 기자가 조선으로 도망함은 商이 周에 망하는 동시에 天의 나라로 돌아옴 이니라.” 민족 사학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고기(古記)와 한서(漢書)를 인용하여 집필한 조선 상고사(朝鮮 上古史)에 나오는 구절이다. 중국사학자나 일부 얼빠진 식민사관의 한국 역사학자가 이러한 내용을 모두 거두절미한 채 조선을 마치 “기자가 세운 조선(소위 箕子朝鮮)”으로 날조하고, 요동은 물론 요서지방까지 장악했던 당당한 조선의 실체적 역사를 중국의 하위개념으로 정착 시키려는 “어거지 조공(朝貢) 역사관”을 만들었다. 조선조의 비굴한 모화사상(慕華思想)과 일제(日帝)의 조선말살 정책이 그 원인을 제공 하는데 일조 했을 것이다.



다시 요서지방으로 돌아와, 단군연대의 고증(考證)에 의하면, 고구려 건국 이전 약 2000년이 단군왕검의 원년이다. 고조선의 분국(分國)인 불리지국(弗離支國)이나 고죽국(孤竹國)이 주서(周書)나 사기에 나온바 조선종(朝鮮種)이라 명시하고 있고 요서지방의 비여(肥如)까지 진출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고조선과 중국의 하,상,주 시대부터 소진과 장의 시대까지 요서지역에 건재했던 조선의 이름은 전국시대 말기까지 불려지다가 거의 2천년 만에 사라진다. 遼西지역이 우리의 역사에 다시 나타나 것은 시황제 이후 600년 가까이 지난 백제의 근초고왕(재위기간: AD346~375) 시절이다. 근초고왕은 부여국 재건을 위해, 요서지방을 경략(經略)하고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한다. 西에는 모용수(慕容垂)의 후연(後燕)과 대결하고 東에는 遼東의 고구려와 맞섰다. 그러나 근초고왕 死後 현재까지 遼西지방은 한민족 곁을 떠나 중국의 영역이 되고 만다. 중국은 슬그머니 요서를 취해 지금까지 천 수백년 동안 완전 중국화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천하를 통일한 한(漢)의 무제(武帝)시절(BC141~BC87) 진나라 유민(遺民)인 위만(衞滿)이 조선으로 도망치자 그들은 조선을 “위만조선(衞滿朝鮮)”이라 이름 붙여 그들의 역사책 사기(史記)에 버젓이 올려 놓는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의 조선전(朝鮮傳)에는 “3조선(신조선, 불조선, 말조선)의 분립(分立)과 같은 조선의 문화적 정치적 사실을 하나도 기록하지 않고 오로지 위만의 동주(東走)와 한(漢)의 동침(東侵)을 썼을 뿐이니 이는 조선전이 아니라 ‘위만의 소전(小傳)’이요, ‘한의 동방침략의 약사(略史)’일뿐”이라고 신채호 선생은 ‘조선 상고사’에서 중국의 유전적 “역사교만병(驕慢病)”을 질타하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우리글을 갖지 못하였기에 자신에 대한 역사기록이 없다. 중국인이 쓴 역사기록의 한 줄에 우리역사를 통째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현재의 세계인들이 중국의 史書를 접할 때 조선의 역사가 그들에게 어떻게 비치겠는가. 우리의 역사가 중국인이 세운 ‘기자조선’이나 ‘위만 조선’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으로 왜곡되지 않겠는가.



요동을 정벌하라던 조정의 명령을 어기고 회군한 이성계의 반란 쿠테타는 조선왕조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중국에 대한 자해적, 자학적, 맹목적인 모화관(慕華觀)을 백성에게 심어준 시발점이기도 하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 했던가. 교육이라곤 태어나서 “하늘천(天), 따지(地)”를 외우기 시작해 중국의 고전과 사서를 읽은 자만이 벼슬을 하고 국가를 운영하였으니 400여년간 중국의 치욕적인 속국(屬國) 역할을 자초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는가. 나라를 세운 위인 이라면 우리의 고대 역사도 알았을 터, 스스로의 자랑스런 역사를 내팽개치고 애써 눈감은 채, 고토(故土) 회복은 커녕 자신의 정치적 욕망과 눈앞의 안일을 더 욕심 낸 부끄러운 조선개국의 자화상이 아니던가. 영국의 ‘킹 아더’가 원탁의 기사와 함께 “하늘을 두려워하고 오로지 나라의 영광과 위대함을 위해 몸바치기로 맹세” 하는 것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 위정자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역사에선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에 로마제국의 ‘옥타비아누스’처럼 이성계가 요동을 정복하고 개선장군이 되어 위풍당당하게 수도에 입성 했다면 조정과 백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저절로 그의 욕망에도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나라의 영광과 위대함에 몸바친 절세의 지도자로 우뚝 서지 않았을까. 만주지방의 역사도, 중국의 역사도, 한국의 역사도 모두 바뀌었을 중요한 기회를 상실하고만 것이다. 무엇보다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요동지역을 되찾는 기회를 놓치고만 것이다. 그 이후, 더 정확히 말한다면 발해가 망한 926년부터 한민족은 요동지역과 영원히 결별하고만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다스리던 두만강 1천리, 압록강 2천리, 송화강 5천리 그리고 흑룡강 7천리는 이제 더 이상 한민족과는 인연이 멀어지고 말았다. 중국은 그 이후 천년 이상 마치 소가 되새김질 하듯이 우물우물 이 땅을 소화하고 차지하고 자기네 국토화 한 셈이다. 그 땅에 살던 말갈, 숙신, 거란과 여진등 만주의 소수민족들까지 모조리 중국의 한족화(漢族化) 블랙홀로 사라져 버렸다. 종국엔 소수민족들의 뿌리와 영혼을 담은 역사마저 중국역사라고 우겨대면서 핏발선 눈을 껌벅거리고 있다.



3천년 이상 지배하던 요서와 요동 그리고 만주대륙 전부를 상실한 조선족만이 살아남아 한반도에서 겨우 명목만 유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만주지역은 수천 년에 걸친 조선족과 중국의 한족이 벌린 전쟁의 역사현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조선족은 자기 땅을 계속 내주고야 종족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 과연 이 선택은 옳은 것인가. 중국은 고조선에서 분화된 고구려를 이용하여 요서를 취하고, 고구려의 요동은 신라와 백제를 이용하여 차지 하였다. 중국은 조선의 분열을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수천 수백년 동안 강온(强溫) 전술을 병행해 가면서 그들이 국제정치에 즐겨 애용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을 교묘하게 적용하였다. 한반도에 가두리처럼 갇혀있는(?) 오늘날의 한민족은 극한대립 속에 남북으로 갈라져 있으며 대한민국은 또다시 격심한 정치갈등과 경제갈등을 겪고 있다. 북쪽은 한푼 값어치도 안 되는 김일성 왕국의 존속을 위해 중국에 목을 매달고 있다. 중국은 과거 종주국의 거들먹거리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있다.



19세기후반 이후 20세기초반, 조선은 물론 청나라(中國)도 어두운 역사의 그늘을 경험했다. 그런 와중에도 1909년 9월 청나라는 소위 형제국인 조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일본과 “청일 간도협약”을 맺고 조선인이 개척해온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간도 지역을 자국영토로 편입하는 파렴치행위를 마다치 않았다. 일본의 강도는 병든 주인이 누워있는 집 안방의 땅문서를 들고 나와 남만주의 철도 부설권과 광산 개발권과 맞바꿔 버렸다. 2차대전이 끝나고 중국과 일본은 1941년 이전의 양국간의 모든 조약을 무효로 한다고 했지만 청일 간도 협약만은 예외인가보다. 간도 협약만은 아직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간도지역을 중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당사국인 한국도 북한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1962년 북한과 중국이 맺은 소위 “조중 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이 간도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지만, 이는 1962년 당시 중공과 북한은 UN의 승인을 받지 못한 국가들의 비밀조약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학자들간에는 “계승(繼乘)의 원칙”이다 “백지(白紙)의 원칙”이다 논란이 있다. 하지만 1885년과 1887년 조청(朝淸)간에 결렬 되었던 간도에 관한 회담은 통일 이후 재론 되어야 마땅하다 하겠다.



얼마 전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분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중국의 부상은 한국에 유리할 수 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중국의 연성(軟性)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한중간의 공통분모(共通分母)가 생각보다 크다.”라고 적고 있다. 물론 그렇기도 하다. 그분은 미국과 중국, 한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과 미국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우리에게 유리한 점들만을 부각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노련한 외교관의 외교적 수사일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에 대한 한국(또는 한민족)의 양보나 패배가 있은 경우 만이 한중간의 공통분모가 형성되고 더 커지지 않았을까. 혹자는 북한이 곧 붕괴될 듯 얘기들 하지만 중국이 있는 한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동서독의 양대 후원 세력중 소련은 급속한 붕괴과정을 겪고 있었다. 1989년 독일의 재통일은 붕괴직전의 소련이 (1991년,소비에트 연방 해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은 과거의 소련과는 다르다. 중국은 G-2로 불리면서 미국과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으로 글로벌 양극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의 정치 경제적 위상에 변함이 없는 한, 북한의 붕괴나 남한의 흡수통일은 불가능 할 것이다. 오히려 남한의 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이 어이 없게도 반대의 현상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갖게 한다.



북한의 대남전략은 이미 1970년대 중반에 바뀌었다고 최근 고위 탈북자들의 증언이 있다. 단순한 프락치나 간첩침투가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고시나 선거를 통한 공직자나 정치계 진출, 노동계 심지어 군 계통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각계각층에 고정간첩들을 합법적으로 심어 둔다는 뜻이다. 현대판 “트로이 목마(木馬)”가 아니겠는가. 20~30년 후를 내다본 것이다. 요즘 시위대 속에서 “이 정권을 무너뜨려 강성대국을 이룩하자.”라는 구호가 들린다던가, 법정에서 공공연히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치는 자가 있다니 어찌 우연일수 있을까. 참으로 무서운 권력의 집념이다. 북한을 두고 현재의 격렬한 정치적 갈등이 우리사회에 만연한 것은 해방 후 정국과 무슨 큰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4~5년 사회 혼란과 갈등을 겪은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6.25전쟁 당시 만주에 흩어져 살던 수십만의 조선족이 중공군의 이름으로 참전한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도 아니다. 남북한 동족끼리의 싸움에 또 다른 동족이 참전한 3파전의 겹싸움이라 할까. 중국의 인해전술(人海戰術)은 이렇게 성공을 거둔 것이다. 중국의 以夷制夷 전술에 놀아난 한민족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이 발발 한다면 중국의 以夷制夷 전략이 또 한번 들어맞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더 타임즈”의 한국특파원인 “앤드류 새먼”씨는 그의 저서 “마지막 한발”(영어명-“TO THE LAST ROUND”)에서 한국전쟁을 “3년간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승자는 없었다. 수백, 수천, 아니 백만이 죽어 나갔지만, 한국전쟁은 전쟁이 시작됐던 바로 그곳 38선 인근에서 다시금 멈추었다.”라고 요약 결론짓고 있다. 물론 뻔한 말이다. 영국군 참전기를 중심으로 그 당시의 영국군을 비롯한 연합군과 한국군, 북한군과 중국군의 전투상황 그리고 남북 민간인들의 삶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말대로 6.25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인 전쟁이다. 아직도 사태를 왜곡하는 무개념 정치인과 무슨단체의 선동가들은 "냉전시대는 갔다."고 외쳐대고 있다. 김일성 일가들이 집권 하는한 그 외침은 바보들의 메아리이든지 아니면 종북주의자들의 교활한 전술일 것이다. 그가 서문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인용한 문구가 인상적이다. “역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막대한 부도 갖지 못했으며 전투도 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하는 주체는 살아있고 실재로 존재하는 인간이다.” “마르크스”의 말이다.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라는 뜻 일께다. 이것 또한 뻔한 말이다. 그렇지만 새롭게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 “이제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소련이 붕괴하고 미국의 일극 체제가 성립 됐을 때 나온 말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말일까. 북한에 김일성 세습왕조가 있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혹시 북한에 정권교체라도 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남쪽은 종북(從北)의 친 북한정권 세력들을 진보라는 과분한 호칭으로 점잖게 불러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도의 “간디”는 “가난은 가장 가장 나쁜 형태의 폭력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여기에 기생하는 “모순(矛盾)의 대가(大家)”들은 대중을 환호케 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순식간에 광기(狂氣)의 집단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식 통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첫번째 이유가 무엇인가. 북한 김정일의 정치행태가 소위 우리의 민주투사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독재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제 군주적인 봉건시대의 세습 독재이기 때문이다. 불의(不義)를 배척하고 진정으로 공공의 선(公共善)을 추구하는 진보 세력과 김일성 왕조의 존속을 바라는 종북 주의자들을 철저히 구분, 가려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동화작가 “알퐁스도테”의 “’새갱’영감의 염소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대내외적으로 감당키 버거운 역류(逆流)를 마주하고 있다. 이 거센 역류에 우리의 집과 땅을 떠내려 보내지 않을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2011-10-13

[인쇄하기] 2013-05-06 11: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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